1등의 책임감

2003년도 12월부터 강의를 시작했던 거 같아요. MEET/DEET가 2004년 겨울 예비시험을 시작으로
시작됐는데 강의를 시작하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죠. 학자가 되려는 목표로 캐나다로 갔는데, 박사
과정 중 논문을 쓰기 위한 테마 실험이 안되면서 꼬이기 시작했어요. 깔끔하게 결과가 나오는 실험이
없었어요. 말하자면 실패를 한 거죠. 지도교수가 적당히 해서 졸업하는 걸로 하자고 이야기를 해줬는데
난 그게 (데이터 조작을 통한 실적 위주의 연구) 싫었어요. 그래서 그만두게 됐어요. 어릴 적 과학자의
꿈, 진리를 탐구한다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공부를 해왔는데 세상은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시작되면서 정이 떨어지더라고요. 이 과정에서 한계를 많이 느꼈고 내가 정이 떨어지니까 못하겠더
라고요. 그래서 그만뒀어요.

그 이후 관심이 있던 컴퓨터로 실험실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했어요. 독학으로 틈틈이 한 건데 이게 뜻밖에 히트가 된 거예요. 소문이 나고 몬트리올 종합병원에서
연락이 와서 제작해달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시대 흐름이 IT로 흘러가는 시기라 진로 변경을 생각했어요.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죠. 생활 부분과 함께 독학으로
한 거라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또 다른 시도를 했어요. 컴퓨터 학원도 하고, 신문사도 운영도 하고 그러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했었어요. 화학을 떠나 많은
시도를 했지만 그게 다 잘 안됐어요. 그래서 결국에는 2002년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어요.

돌아오고 나서 고민하다가 생각을 한 것이 학원이었어요. 처음에는 중고등 입시학원으로 출강을 했어요. 그러던 중 유기화학 강사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올라
왔어요. 확인했더니 MEET/DEET 시행 예정 정보를 업체에서 확인하고 그걸 준비하기 시작하는 학원이 있었고 그러면서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타이밍이 맞아 그 때부터 MD 강의를 시작하게 된 거죠.



전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어요. 사실 노는 거 되게 좋아하거든요. 저 가을에 강의 안 하잖아요? (실제로 신진욱 교수님은 9~10월에 여행 중이신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 때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거죠. 여행도 다니고, 사진도 찍고, 자전거도 타고, 글도 쓰고, 연극이나 뮤지컬도 관람하고… 취미 차원이라면 정말 많은 걸 해요. 고스톱이나 카드도 치고, 당구도 치거든요. 당구를 쳐 본지는 오래됐지만… 저 못하는 거 없이 다해요. 게임도 했었고… 진짜 많은 걸 하는데 내가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난 아마도 예술가가 됐을 거예요. 예술가라고 하시면 구체적으로 어떤 예술가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마 연극배우나 뮤지컬 배우가 됐을 거 같아요. 그것도 아니면 작가가 됐을 거예요. 시나리오 작가나 소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예술가라고 대답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아니면 예술가가 되기 위해 준비하셨던 것이 있으셨어요?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등학교 때 뮤지컬이 너무 하고 싶어서 대학로 극단에 찾아가서 오디션도 봤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어요. 하지만 미성년자니까 부모님 허락을 받아오라고 해서 거기서 좌절을 했죠. 사실 제가 그런 예술가라고 대답한 부분은 아버님이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는데 교사 극회를 운영하셨어요. 아동극도 하고 그랬는데 중학교 때까지 같이 참여를 하면서 무대에 좀 서봤어요. 근데 정작 아버님께서는 취미로는 즐거워 하셨는데 당신 아들이 그것을 하겠 다니까 반대를 하신 거죠. 그 때 전 그걸 무시하고 할 만큼의 열정은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팬으로만 좋아하기로 했죠. 근데 아직도 공연 보는 거 굉장히 좋아해요.

그 동안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Identity는 있어야 할 거 같았어요. 다들 연상이 되겠지만 ‘Perfect’에서 나온 건데 사실 없는 단어예요. ‘Perfect + 그리스 접미사’를 붙여서 만들어낸 단어예요. ‘완벽하다’에서 나온 건데 완벽할 수는 없죠. 하지만 완벽해 지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는 거죠. 완벽해 지기 위해 노력하는 강의라고 해석해도 될 거 같아요. 다 같이 완벽해 지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학생들도 완벽해 지고, 나도 완벽해 지기 위해서 노력하고… 완벽은 이룰 수 없는 것이지만 노력은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유기화학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이 있어요. 일반화학 차원에서 알아야 할 것들이 안되어있는 학생들이 유기화학을 암기하려고 하거든요. 기본부터 같이 시작한 학생들은 “원자 주변에 전자가 어디 있지? 전자가 원자핵에서 떨어져 있으면 에너지가 어떻게 달라지지?” 하면서 시작하거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유기화학으로 넘어가고 이해해야 하는데, 이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오니까 공부를 해나가는 체계 자체가 달라서 힘든 거죠. 암기를 베이스로 하는 체계가 아니라 원리 이해를 베이스로 한 체계니까 그게 적응하기 힘든 거죠. 근데 결국 결론은 ‘그래서 저 반응이 이렇게 되는구나’ 깨닫게 되는 건데 반응을 암기하고 온 학생들은 거기까지 연결되는데 시간이 걸리는 거죠.

슬럼프나 매너리즘. 그런 것도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데 전 강의할 때 마다 긴장된 상태로 하거든요. 많은 학생이 보고 있는데 거기에서 그냥 줄줄 나오는 거 읊고 있으면 안되잖아요. 학생들 반응이나 눈빛이 다 다른데… 학생들 입장에서는 어떤 평생의 기회가 걸린 일이라 난 굉장히 긴장된 상태에서 강의해요. 내 강의는 오늘 다르고 내일 달라요. 별로 만족을 못하고 있으니 계속 변화를 주는 거겠죠. 큰 흐름을 보면 계속해서 개선을 하고 있는 건 맞는 거 같아요. 학생들이 뭔가를 알고 싶어하는 부분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까 개선해야 하는 부분을 찾고 계속 바꾸게 되는 거죠. 학생이 못 알아듣는 내용은 알아듣게 해줘야 하는 거잖아요. 그건 전적으로 내 책임이에요. 학생이 못나서가 아니라 내가 못 가르쳐서 그런 거예요. 그러니 내가 만족을 할 수 없는 거죠. 죽을 때까지 만족을 못하겠죠. 다만 하루하루 수업 이후 대화가 잘됐다고 느끼면 마음이 가볍죠.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분위기로 봤을 때, 학생들의 눈빛이나 표정의 변화 등 학생들이 많이 알아들은 거 같으면 그 날은 마음이 좀 가볍죠. 늘 그런 건 아니니까 아쉬운 부분은 다음 수업에 반영을 하고 달라지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가장 즐거운 거는 합격생을 보는 게 가장 즐겁죠. 합격생을 보는 게 가장 즐거운데 실패한 학생들이 있어 즐거울 수만은 없죠. 누군가는 떨어져야 했으니 까요… 가장 안타까운 건 유기화학은 만점 받고 떨어지는 친구들이예요. 유기화학에 대해서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을 다한 건데, 타과목 때문에 떨어진 학생들이 제일 안타까워요. 그건 제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잖아요. 그래도 합격한 학생들을 보면 즐겁고 보람을 느끼죠.

	제 약점이 뭐냐면 판서를 못해요. 글씨도 잘 못쓰고 그림도 잘 못 그리고 선 하나를 그어도 삐뚤어져요. 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PPT를 이용해서 ‘판서와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해서 그 때부터 PPT를 활용한 거예요. 구조 같은 건 칠판에 그리기도 하지만 PPT를 이용해서 그리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그것의 장점을 이용해서 애니메이션 같은 것(분자 입체구조)도 보여주고 반응이 실제로 일어날 때 어떤 식으로 움직임이 일어나는지 눈으로 보게 만들어주고 그런 부분들이 학생들에게 많이 어필을 했죠. 또 이게 더 학생들한테 효율적이고 도움이 되요. 왜냐하면 학생들이 강의를 듣는데 집중할 수 있거든요. PPT를 활용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집중해서 들어라!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해야 나중에 공부를 해도 될 거 아니에요.
과거 출제위원이나 현직 교수로 있는 친구들한테 일단은 고액의 비용으로 문제를 사와요. 하지만 쓸 수 있는 문항은 별로 없어요. 근데도 사는 이유는 아이디어를 사는 거예요. 어떤 시각에서 문제를 볼 수 있는지 보는 거죠. 문제에 대한 제 철학은 학생들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걸 줘서는 안된다는 거죠. 나만이 해줄 수 있는 것,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것, 그러면서도 정말 구석진 곳에 있는 주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알만 하지만 정확한 개념이 없으면 풀 수 없는 것들, 그런 것들이 학생들 하고 대화가 되니까 어디가 약한지 알잖아요. 그런 것들을 묻는 거죠. 그런 부분에 대해 학생들의 만족도가 올라가는 거로 볼 수 있는 거죠. 쉽게 풀 수 있을 거 같은데 풀리지 않으니까 자기 오개념을 확실하게 알게 되는 거죠, ‘내가 뭐가 부족하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부분을 채울 수 있으니까 거기에서 그 다음 단계로 넘어 가고 하는 것이 가능한 거죠.

전 수업시간에 다른 이야기는 잘 안해요. 그런데 수강생 중 재밌다고 하는 건 스토리 구성이 되기 때문에 재밌다고 하는 거예요. 스토리가 이해가 되면 그걸 따라오기 때문에 재밌는 거죠.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내가 이런 구조, 이런 성질을 가지니까 어떤 행동을 할까?에서 나름 자기 논리를 가지고 따라오고 있다는 거예요. 내가 열어주는 길로 따라오고 있기 때문에 진짜로 재미있어 하는 거예요. 강의 자체를 이해하는 학생들은 굉장히 다이나믹하다고 이야기를 해요. 난 학생들의 약점을 알기 때문에 학생들을 흔들어 놓는 거예요. “이렇게 생각을 하지?” 했다가 갑자기 뒤집히는 이야기를 해요. “그럼 이건 왜 이렇게 될까?” 그러면 연결이 될 듯 하다가 갑자기 맥이 끊기거든요. ‘왜 저렇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거죠. 그러면서 답을 제시해 주면 ‘아! 그렇구나’ 하면서 따라오는 거죠. 이런 방식이 대부분이에요. 그러니 강의를 정말로 따라오는 애들은 지루하다는 이야기를 못해요. 할 수가 없죠. 다만 지루하다, 재미없다라고 이야기하는 학생들은 그걸 못 알아 들어서가 아니라 내가 농담이나 이런 걸 안하고 진지모드로 원리 설명에 초점을 맞추니까 그런 면에서 다른 강좌에 비해 웃을 부분이 없고, 목소리 톤이 엄숙한 편이라 그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거 같아요.
원리와 대화! 자연스럽게 이해가 가고 서로 대화가 될 수 있어야 되는 거죠. ‘이게 왜 그렇지?’라는 의문을 가졌을 때 자기 자신과의 대화, 학생과 나와의 대화, 그리고 책과 학생들 사이의 대화. 결국 시험장에서는 시험지와 수험생과의 대화! 그게 되어야 문제가 풀리는 거죠.

하나는 다 버리고 떠났다가 돌아오는 거죠. 모든 걸 내려놓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휴식을 주는 거죠. 계속 긴장된 상태로 밀어 붙인다고 다 되는게 아니에요. 가끔 긴장도 풀어줘야 하고, 공부가 안되면 과감하게 쉬는 거예요. 쉬는 기간의 문제겠지만 짧으면 2~3일, 길면 일주일 정도까지도 쉬라고 이야기를 해줘요. 물론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요. 또 다른 하나는 마인드 컨트롤이죠. 초심으로 돌아가라! 다 놓고 쉴 수 있는 배짱이 없다면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짚어주는 거죠.
지금이 7월이라고 생각하고 다음 달이 시험인데 4월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하겠냐? 스스로 잘못한 것을 알고 3개월 전으로 돌아간다면 본인이 고치려고 하겠죠. 그거를 가정해서 그 상황이 되게 만들어주는 거죠. 이렇게 생각하면 3개월의 기회가 주어지는 거니까요. 그 때 가서 후회하지 말고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지금 하라는 거예요. 아쉬움이 남지 않게 하는 거죠.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생각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에 관한 문제죠. 흑백논리에서 벗어나고 균형 있게 공익이라는 차원에서 철학자들, 논리학자들의 아이디어가 계속 변해 왔는데 입장에 따라 다르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 다르고 실제 사회에 끼친 영향이 다르고 하는 것들을 자기 중심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삶을 돌아보게 해주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는 좋은 책인 거 같아요. ‘나는 고백한다. 현대 의학을’ (아툴 가완디) 하버드 외과외사가 쓴 책인데 원재는 complication(합병증)으로 의사들 오진에 관련된 이야기예요. 병원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오진으로 멀쩡한 사람을 망가뜨리는 사례가 나와요. 의료행위라는 것이 불확실하고 불완전하고 사람들에게 신뢰할 수 없는 프로세스를 보여줘요. 근데 결론은 이 부분이 아니라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고, 단지 노력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겸손하게 현존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냉정하게 문제를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의료는 완벽한 게 아니다.’라는 거예요. 지금 의료는 완벽한 게 아니고 완벽하기 위해서, 누구 한 사람의 피해자도 생기지 않도록 좀 더 철저하게 대비하고 시스템을 갖추도록 공부하자는 거예요.
요즘 학생들에게 많이 느끼는 것이 굉장히 조급하다는 거예요. 당장 output이 있어야 하고, 당장 재미가 없으면 그만두고 하는 그런 경향이 점점 심해지는 거 같아요. 조금 느리더라도 끈기 있게 더 큰 목표를 향해 자기 믿음을 갖고 꾸준하게 해나가는 추진력이 필요 하다고 봐요. 인생은 길어요. 당장 문제가 안풀리면 어때요? 좀 괴롭고 실망스럽긴 하지만 실전에서 안 틀리면 되는 거잖아요. 즉 작은 것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말고 크게 보고 자기 소신을 가지고 꾸준하게 하라는 거예요. 자기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 하지 말고 크게 보고 크게 움직이면서, 한 번 더 생각하고 큰 무게 중심을 두면 사소한 것에 기뻐하거나 슬퍼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꾸준하게 초지일관 초심으로 밀어 붙이면 성공한다는 거예요.